중립보다는 투명

  • 2025-07-27

메모. 중계 채널의 역할에 대해

독자들이 각종 정보 취합 서비스, RSS 피드, 트위터 같은 전파 플랫폼 등 서로 다른 출처로부터 자신만의 정보를 조합해서 읽게 되면서 뉴스는 원자화되었고, 이에 따라 뉴스의 비중성과 포괄성에 대한 책임이 뉴스 제공자로부터 개개인에게로 옮겨왔다. (As news has become atomized - as increasingly we get information from aggregators, RSS feeds, or delivery platforms such as Twitter in which we assemble our own news from disparate sources - the responsibility for proportionality and comprehensiveness shifts from the news provider to the individual.) —Chapter 9, The Elements of Journalism 3rd ed.

여기에서 말하는 비중성과 포괄성(proportionality and comprehensiveness)이란 이런 뜻이다. 포괄성은 중요한 이슈를 빠짐없이 담는다는 뜻이고, 비중성은 각 이슈를 비중에 맞게 다룬다는 뜻이다. (물론 어떤 이슈가 중요한 이슈인지, 또 각 이슈를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다뤄야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인데, 주관적이라고 해서 고민을 안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 비중성과 포괄성에 대한 책임이 뉴스 제공자로부터 개개인에게로 옮겨왔나? SNS, 검색엔진, 포털 등은 책에서 묘사하는 바와 달리 수동적인 중계 채널이 아니다. 극소수 IT 기업들이 우리가 접하는 뉴스의 비중성과 포괄성에 대단히 크게 관여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은 거의 지지 않고 있으며, 개개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상적인 언론 환경에 대한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텐데, 판을 다 엎고 새로 짜는 방법 말고 망가진 현재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이상적인 환경으로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제약이 참 많은 것 같다.

포털은 언론의 일부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 그런 줄도 모르던 상황에서 역할을 분명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책임을 되도록 회피하려는 상황으로 옮겨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기업은 언론의 일부 역할을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팩트체킹, 질 좋은 기사가 더 잘 유통되도록 돕기, 공론장 제공 등) 본질적인 이해상충(어텐션 장사)으로 인해 한계가 있을테고. 그런데 그 한계는 IT 기업에만 있다기보다 전통적인 언론기관에도 항상 존재한다는 점에서(자극적 기사 쓰기, 특정 계층 독자의 관심사에 지나치게 편향된 비중 등으로 광고수익 올리기) 그 자체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몇몇 IT 기업(페이스북, 네이버 등)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IT 기업은 IT 기술을 잘 활용해서 포괄성과 비중성에 훨씬 더 적극적/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IT 기업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인터넷 이전 시대에 비해 많은 책임이 개인에게 옮겨왔다는 점은 동의. 다만 마치 이 ‘유통 환경’은 중립적인 매개자인냥 묘사된 부분은 문제다.

뉴스 소비자에게 책임이 옮겨져왔다라는 약간은 진부한 진단은 결과적으로 IT 기업의 책임 회피를 돕는 측면도 있고(IT 기업과 개별 소비자 사이에 압도적인 비대칭이 존재하는데 그저 개개인에게 양식있는 소비를 하세요, 제목 낚시가 싫으면 클릭하지 마세요, 이런 뻔한 말 하는 느낌?), 뉴스 소비자 개개인이 저널리즘에 대해 더 나은 소양을 갖추는건 당연히 좋은 일임에도 그 좋은 일이 그저 “책임이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표어만으로 갖춰질리 만무하다는 생각도 항상 해왔다. 이 두번째 문제를 나는 어느 정도 닭-달걀 문제라고 본다. 깨어난 시민(informed citizen)을 만드는게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텐데 언론 환경이 망가진 상황에서 스스로를 깨울 책임이 개개인에게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

기계적 중립, 초월적 객관은 뉴스의 생산 시점에서부터 달성 불가능하고 중립적/객관적인 유통 채널 또한 있을 수 없으니 생산자이건 유통채널이건 편향을 인식하고 드러내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유통 채널이 중립/객관을 지향하면 편집권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가능한 기대를 버리고 언론과 유사한 책임 의식을 좀 더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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